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정말 오랜만에 이 블로그에 글을 쓴다. 심지어 이 글을 쓰기 위해 휴면 계정을 다시 되살려야했다. 


책과 문학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대폭 줄어들었다. 아마 이유는 내가 영어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그러다보니 책 한 권을 읽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특히 문학책은 더 꺼리게 된다. 그리고 독후감도 영어로 쓰려고 하다보니 장벽이 높아 결국 안 쓰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랜만에 친구가 빌려줘서 한글 책을 읽게 됐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전혀 몰랐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훈훈한 감동이 있는 책이다. 난 보통 어둡고 우울하고 인간 내면의 고독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완전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후루룩 읽을 수 있고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 같은 책이었다. 



— 여기부터 스포일러 주의 — 



이 책은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을 의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고민 사연 중에 역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약간의 새드 엔딩이라고 볼 수 있는 야반도주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중학생의 남자아이가 부유한 집에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어마어마한 빚이 생기고, 화목했던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결국에는 부모님이 야반도주를 계획하게 된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를 동경하며 살아가던 이 남자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과 신뢰가 급격하게 불신으로 변하고, 비겁하게 야반도주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가기 싫어진다.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는 편지를 나미야 잡화점에 보내고,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든 가족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한다. 


그 말을 듣고 남자아이는 부모님을 따라나서지만, 야반도주를 떠나는 날 밤 막판에 마음이 돌아서버린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밴드 비틀즈의 레코드판들을 전부 친구에게 만엔을 받고 팔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그걸 고작 만엔에 파냐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참는다. 짐을 모두 싣고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리는데, 휴게소 화장실에서 아버지는 그 얘기를 또 꺼내고 만다. 만 엔이 있으니까 앞으로 당분간은 용돈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고작 만엔을 가지고 쪼잔하게 구는 아버지가 너무나 미운 와중에, 아버지가 볼일을 본 후 손도 씻지 않고 화장실을 나가 버린다. 그 순간 아버지를 믿어보겠다는 그 실낱 같은 희망은 툭 끊겨버린다. 화장실을 나와 남자아이는 무작정 달려서 자신만의 길을 간다.


돈을 갖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화장실을 손 안 씻고 나가는 것도 사실 큰 일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신호가 되어 사람에 대한 감정이 와장창 무너지고 만다. 그 부분이 너무나 와닿았다. 나 같아도 그 상황에서 남자아이처럼 도망쳐 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남자아이는 경찰서, 아동 보호소 등을 거치고 목각 장인으로 성장한다. 처음에는 남자아이를 가출 소년으로 의심했지만, 아무도 이 남자아이를 찾지 않자, 결국 남자아이는 새로운 호적을 갖고 새 인생을 살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한 번도 찾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오던 그는 몇십년 후에, 부모님이 자신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고 알려졌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부모님은 그가 자신들의 빚에 얽매이지 않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배까지 타고 나가 남자아이까지 죽은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이제는 아저씨가 된 남자아이는 다시금 ‘그 때 혼자 가족이라는 배를 떠나서는 안 되었던 것인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 야반도주를 하기 전날 봤던 비틀즈 영화에서 비틀즈의 멤버 넷은 마지막 공연을 하는 중에 열정도 없고 함께 만든 밴드를 사랑하는 마음이 1도 없이 따로 논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동반자살 뉴스를 듣고 다시 본 그 장면에선 몇십년 전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열정이, 밴드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마지막 공연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던 밴드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남아있었든 없었든, 결국 밴드는 해체했다. 서로가 서로를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포기했다. 그 끈을 갉아먹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아마 사소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여러 상황과 갈등들에 의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때, 우리는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 걸까? 감정이란 밀물과 썰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잠깐의 썰물 때문에 관계를 포기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일까? 일시적으로 상대방이 의지가 되지 않는다고 등을 돌려 버리는 행위는 간신배적인 행동일까? 그래도 썰물에 썰물만 거듭해, 더 이상 남은 물 없이 척박하고 갈라진 땅만 남았을 때, 그 때는 아마도 포기해야만 하겠지? 하지만 그게 가족이라면? 핏줄, 아주 오래부터 함께했던 시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갓난아기 때부터 나를 돌봐주던 정으로 엮인 가족이라면, 볼썽 사납게 말라버린 땅 앞에서도 생수통이라도 부어가며  땅을 적시려고 노력해야 하는 걸까? 


남자 아이 혼자만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는 그 날 밤 도망쳤던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 그의 부모님은 모두 자살의 길을 택한다. 가족 전체 행복의 sum을 생각하면, 남자 아이가 그 날 잠깐의 빡침을 견디고 부모님이 계신 밴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남자 아이가 부모님을 따라갔지만 결국은 셋이 모두 동반자살을 하게될 수도 있다. 정말 어려운 딜레마다. 나미야 할아버지도 이런 질문들을 접하면 아주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결국에는 본인이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되어 있고, 옳은 정답이란 없다. 세 명의 좀도둑처럼 미래를 미리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최적의 해답을 줄 수도 없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역할은 현재의 내 마음을 다시 찬찬히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만일 남자 아이가 화장실에서 뛰쳐나가기 전에 나미야 할아버지와 편지 교환을 한 번 더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의 가족은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한 번 해 본다. #나미야할아버지가카톡만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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