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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9 공항에서 일주일을 -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일주일을(히드로다이어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영미에세이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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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의 기록은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기도 하다." - 발터 벤야민(문화평론가)

그래도 그들이 나와주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냥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우리가 작은 아이였을 때 누군가 가끔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대 여기까지 올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주어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사회 생활에서는 힘과 강인함을 투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위태로운 피조물들이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을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또 그들 역시 우리를 무시하지만, 늘 우리의 행복의 가능성을 볼모로 잡고 있는 소수가 있다.

작가들이 가정 내의 경험을 넘어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현대 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다른 기관에 상주하는 꿈을 꿔보았다. 은행, 핵발전소, 정부기관, 양로원 같은 곳. 그런 곳에서 여전히 무책임하고 주관적이고, 약간 별나면서도 세상에 대한 보고가 담긴 글을 쓰는 꿈을.

*

내 친구의 꿈은 공항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어디 먼 데로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고.
그런데 스튜어디스나 파일럿이 될 수는 없으니, 그냥 공항 창구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공항은 온갖 설레임과 로망이 가득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공항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딱딱하고 무심한 말투보다,
좀 더 감성적인 말투로 쓰여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것은, 젊은 두 연인의 눈물어린 키스에 행인들이 동정심을 드러냈다는 관찰보다는, 공항에서 헤어지기까지 그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히드로 공항에서 나눈 클라이막스적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면, 히드로 공항에 더 애정이 생겼을 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기술」처럼 전반적인 여행에 대해 다룬 것도 아닌,
그렇다고 소설들처럼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히드로 공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1주일간의 관찰만이 담겨 있어서,
히드로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애시당초 별로 없던 나로서는 그렇게 흥미롭게 읽을 수 없었다.
프루스트에 대한 배경지식과 일말의 애정도 없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술술 읽을 수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