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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5 공중그네 - 오쿠다 히데오
  2. 2010.01.17 흑과 다의 환상 - 온다 리쿠 1

공중그네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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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행동을 1년 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 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내 말이 맞잖아. 얘기를 들어보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





사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오는 책이다.
정말 정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그렇다고 교훈이 없는 게 아니다.
가볍게 읽으면서도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각기 다른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또라이 정신과 의사 이라부에게 진찰을 받으러 오는 에피소드들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구토를 할 정도의 강박증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우리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나름의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오쿠다 히데오 씨는 재미있는 강박증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게한다.

여기에 나오는 강박증 환자들의 강박증 요소는 다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정신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서 꽤 높은 위치에 도달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 생긴 강박증 때문에 그동안 내가 잘 살아 온 것인가, 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강박증인 것이다. 
'고슴도치'에서는 잘나가는 야쿠자 조직의 중간 보스였고,
'공중그네'에서는 서커스단에서 공중 묘기부분의 리더,
'장인의 가발'에서는 종합병원 교수의 딸과 결혼한 잘나가는 의사,
'3루수'에서는 9년째 프로에서 뛰고 있는 잘나가는 3루수,
'여류작가'에서는 베스트셀러만 몇 권을 낸 잘나가는 여류작가.
이렇게 다들 잘 나가는 사람들이고, 지금까지 잘만 나아갔던 사람들인데,
어느날 문득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강박증'
너무 조급한 마음과 불안 때문에 생긴 이런 강박증들은
세상에서 가장 태평한 것 같은, 정말 해표만큼이나 태평한 것 같은 이라부에게 비타민 주사를 몇 대 맞으면 치료된다.

이라부는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일까 ,생각이 없는 척하는 사람일까.
궁금하다.
그가 하는 생각 없는 행동들이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생각 있는 행동이었을까.
다소 혐오감이 들 수도 있고 또라이 같기도 하지만 뭔가 미워할 수 없는 이라부 의사.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흑과 다의 환상 - 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온다 리쿠 (북폴리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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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온다 리쿠 (북폴리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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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랑이 식었을 무렵의 침묵은 공허한 주제에 납덩어리처럼 무겁다. 그 무렵에는 말은 너무나도 무력해서, 어떤 말이든 블랙홀 같은 침묵이 삼켜버린다. 이 단계의 침묵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이 침묵을 깨뜨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아직 사랑이 남아 있는 쪽은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은 쪽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말이란 서비스고, 대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이미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된 사람에게 서비스해 봤자 소용없다. 

* 인간은 역시 힘든 일을 겪어봐야 된다는 기분이 어딘가에 있는 거야. 이러면 안 되지,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어, 그렇게 말이야. 나는 거기에 결혼이라는 것의 심원한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겉으로 보기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주 교묘해. 입구는 재미있어 보이지. 어째서 이렇게 재미있는 걸 싫어하는 걸까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그 길을 선택해. 나중에 그게 고행이 돼서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해. 아아, 이 얼마나 교묘한가. 환멸, 그것은 인간을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늙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만큼 그 존재 안에 환멸에 내포된 것은 없다.

* 육체가 정신의 그릇이라 한다면, 정신은 시간의 그릇이 아닐까.

* 대학시절 친구를 만날 때 마음이 편한 것은 어차피 용 써봤자 이미 오래 전에 다 들통 났다는, 그 어리석고 자의식만 비대했던 십대 말과 이십대 초를 공유한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태반을 차지한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에 나와서 얻은 친구들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한다는 연대감으로 묶여 있고 평생 친구로 남을 녀석이라도, 인생 제 2부의 친구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초에 토대가 다르기 때문에. 제 1부의 인물과 제2부의 인물을 중복시키기 어렵다. 사람은 제2부에서 소원했던 인생을 손에 넣고 제2부의 자기 자신에 안주하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본질은 역시 제1부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사귄다는 것은 곧 동경하던 대상이 자기가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는 뜻이다. 그것은 근사한 체험이지만, 동시에 환멸이기도 하다.

* 젊음과 자연의 가치는 나이를 먹을수록 알게 된다. 양쪽 모두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싫지는 않다. 가진 것이 젊음밖에 없던 시절에는 힘들었다. 유일한 카드인 젊음을 유용하게 사용할 방법도 모르고 목적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괜히 조바심을 쳤다가 열등감에 시달렸다가 했다.

* 애정과 우정, 정열, 꿈. 그런 말들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사랑 씩이나 되면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십대 때에는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고 있는,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줄곧 찾다가 모르고 지나쳐버린 도로표식 같은 느낌이다. 결국 그게 없어도 목적지에는 도달할 수 있다.
 
* 사랑과 비슷한 것은 얻었다고 생각한다. 안식이라든지, 연대감이라든지.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에는 엄청난 파괴력 같은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말에 흡수해서 동화시켜 버린다. 모든 것이 그 이름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한다. 누구나 사랑 앞에 엎드려 절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겁을 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말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못 본 척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이 책 참 재밌다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한 때, 그 친구의 취향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 책 한 번 꼭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했었고 그리고 이제야 읽게 되었다.
온다 리쿠의 책은 처음인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들의 삶은 정말 우리와 같은 '일상'이지만, 이 이야기는 '비일상'을 모티프로 삼은 여행 이야기다.
그래서 일상이지만서도 비일상을 맛보는, 그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참 좋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정신세계도 신비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인지 도무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어서 하루종일 책을 읽어 상,하권 다 읽었다.
보통 책을 참 느릿느릿 읽는 편인데 말이다.

남자 2명 여자 2명 이렇게 대학동창들끼리 떠난 여행을 떠나는데, 참 다들 선남선녀다.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하다.
여행에서 싸우는 일은 허다하지만, 그다지 싸움이라고 할 만한 갈등은 없다.
깨끗하다.
이렇게 잘난 친구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질투도 많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직 애정밖에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슬픔과 트라우마들이 있지만, 그 모두가 약간은 숭고한 슬픔이란 느낌이다.
깨끗하다.
인물 네 명 각각의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참 이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 네명이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신이 자기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는 누구에게 하는 것이라도-자기 자신에게 할 때도 - 좀더 자기 우호적으로 좀 더 깨끗하게 씻어서 말하는 편이니까.
추한 면은 모두 삭제되고 쓰여있는 그런 이야기여서인지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숭배하게 되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마치 셜록 홈즈를 읽으면 셜록 홈즈에 대해 막연하게 동경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을 주도록 쓰여진 소설이었다.

각자의 삶과 가치관이 섞여 있는 심오한 대화와 토론, 그리고 수수께끼스러운 과거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참 재밌다.
확실히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