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에 해당되는 글 2

  1. 2011.02.04 여름의 마지막 장미 - 온다 리쿠
  2. 2010.01.17 흑과 다의 환상 - 온다 리쿠 1

여름의 마지막 장미 - 온다 리쿠

여름의마지막장미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온다 리쿠 (재인,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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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보이는 일을 하는 인간들 중에는 밖으로 내보이는 얼굴이 평소와 다름 없는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있다. 나나 미즈호는 평소와 다름 없는 부류이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실수로 결점을 드러낼 일도 없다. 반대로 싹 바뀌는 타입은,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바꿔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리라. 그런 사람은 어디에선가는 정신을 놓고 있어야지, 안 그러면 본인이 느끼는 이상으로 심신이 소모된다.
 **

뭔가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요즈음의 나는 나에게는 닿을 바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혼자, 또는 나의 바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바닥에 닿는다.
그리고 바닥을 딛고 그 반작용으로 다시 원래의 고도로 돌아와 평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도 그런 바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분명히 조금 눅눅한 지하실을, 깊숙한 곳에 바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그 지하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내 생각과 비슷한 맥락의 부분이라서 인상 깊었다.

 그 세 자매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 자신의 허상을 만들어 간다.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상, 남들이 이것을 자신이라고 여겨 줬으면 하는 상을.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이래서 온다 리쿠 소설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다 리쿠는 허상을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궤뚫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소설도 비슷한 연장선 상에 있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다들 자신만의 기묘한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아무튼 그 세여자는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기묘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사쿠라코는 주장한다. 그야 그럴 것이다. 우리가 그렇듯,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정한 세계에서만 생활할 수 있다. 불현듯, 이 호텔에 묵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유가 아닐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뒤틀린 망상의 세계에 사는 자매가 뒤틀린 인간들을 초대한다.
 **

뒤틀린 사람들이 풀어내는 기묘한 사실 같은 허구들에 탐닉하는 나도 뒤틀린 인간들, 그런 유인 것일까?
두 번째로 읽는 온다 리쿠 소설이다.
처음 읽은 것은 「흑과 다의 환상」.
그 책에서나, 여기에서나, 조금 기묘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작가는 만들어 낸다.
숲 속 호텔과 같이 다소 음침하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선택 받은 사람들만 초대 받아 오는 밀폐된 사회,
그리고 우리에게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사람들. 도키미쓰와 사쿠라코.
흑과 다의 환상에서도 다들 선남선녀에 특히 한 명은 아주 매력적인 남자였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일본 이름은 너무 어려워.... ㅠㅠ 
기묘하지만 아름다운 비일상적인 세계가 나를 유혹한다.
온다 리쿠가 생생히 재현하는 환상에 두 번 모두 완벽히 유혹 당했고 빠져들었다.





흑과 다의 환상 - 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온다 리쿠 (북폴리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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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온다 리쿠 (북폴리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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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랑이 식었을 무렵의 침묵은 공허한 주제에 납덩어리처럼 무겁다. 그 무렵에는 말은 너무나도 무력해서, 어떤 말이든 블랙홀 같은 침묵이 삼켜버린다. 이 단계의 침묵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이 침묵을 깨뜨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아직 사랑이 남아 있는 쪽은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은 쪽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말이란 서비스고, 대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이미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된 사람에게 서비스해 봤자 소용없다. 

* 인간은 역시 힘든 일을 겪어봐야 된다는 기분이 어딘가에 있는 거야. 이러면 안 되지,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어, 그렇게 말이야. 나는 거기에 결혼이라는 것의 심원한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겉으로 보기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주 교묘해. 입구는 재미있어 보이지. 어째서 이렇게 재미있는 걸 싫어하는 걸까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그 길을 선택해. 나중에 그게 고행이 돼서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해. 아아, 이 얼마나 교묘한가. 환멸, 그것은 인간을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늙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만큼 그 존재 안에 환멸에 내포된 것은 없다.

* 육체가 정신의 그릇이라 한다면, 정신은 시간의 그릇이 아닐까.

* 대학시절 친구를 만날 때 마음이 편한 것은 어차피 용 써봤자 이미 오래 전에 다 들통 났다는, 그 어리석고 자의식만 비대했던 십대 말과 이십대 초를 공유한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태반을 차지한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에 나와서 얻은 친구들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한다는 연대감으로 묶여 있고 평생 친구로 남을 녀석이라도, 인생 제 2부의 친구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초에 토대가 다르기 때문에. 제 1부의 인물과 제2부의 인물을 중복시키기 어렵다. 사람은 제2부에서 소원했던 인생을 손에 넣고 제2부의 자기 자신에 안주하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본질은 역시 제1부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사귄다는 것은 곧 동경하던 대상이 자기가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는 뜻이다. 그것은 근사한 체험이지만, 동시에 환멸이기도 하다.

* 젊음과 자연의 가치는 나이를 먹을수록 알게 된다. 양쪽 모두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싫지는 않다. 가진 것이 젊음밖에 없던 시절에는 힘들었다. 유일한 카드인 젊음을 유용하게 사용할 방법도 모르고 목적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괜히 조바심을 쳤다가 열등감에 시달렸다가 했다.

* 애정과 우정, 정열, 꿈. 그런 말들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사랑 씩이나 되면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십대 때에는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고 있는,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줄곧 찾다가 모르고 지나쳐버린 도로표식 같은 느낌이다. 결국 그게 없어도 목적지에는 도달할 수 있다.
 
* 사랑과 비슷한 것은 얻었다고 생각한다. 안식이라든지, 연대감이라든지.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에는 엄청난 파괴력 같은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말에 흡수해서 동화시켜 버린다. 모든 것이 그 이름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한다. 누구나 사랑 앞에 엎드려 절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겁을 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말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못 본 척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이 책 참 재밌다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한 때, 그 친구의 취향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 책 한 번 꼭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했었고 그리고 이제야 읽게 되었다.
온다 리쿠의 책은 처음인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들의 삶은 정말 우리와 같은 '일상'이지만, 이 이야기는 '비일상'을 모티프로 삼은 여행 이야기다.
그래서 일상이지만서도 비일상을 맛보는, 그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참 좋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정신세계도 신비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인지 도무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어서 하루종일 책을 읽어 상,하권 다 읽었다.
보통 책을 참 느릿느릿 읽는 편인데 말이다.

남자 2명 여자 2명 이렇게 대학동창들끼리 떠난 여행을 떠나는데, 참 다들 선남선녀다.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하다.
여행에서 싸우는 일은 허다하지만, 그다지 싸움이라고 할 만한 갈등은 없다.
깨끗하다.
이렇게 잘난 친구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질투도 많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직 애정밖에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슬픔과 트라우마들이 있지만, 그 모두가 약간은 숭고한 슬픔이란 느낌이다.
깨끗하다.
인물 네 명 각각의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참 이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 네명이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신이 자기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는 누구에게 하는 것이라도-자기 자신에게 할 때도 - 좀더 자기 우호적으로 좀 더 깨끗하게 씻어서 말하는 편이니까.
추한 면은 모두 삭제되고 쓰여있는 그런 이야기여서인지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숭배하게 되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마치 셜록 홈즈를 읽으면 셜록 홈즈에 대해 막연하게 동경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을 주도록 쓰여진 소설이었다.

각자의 삶과 가치관이 섞여 있는 심오한 대화와 토론, 그리고 수수께끼스러운 과거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참 재밌다.
확실히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