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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3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2. 2010.08.1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강요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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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반해 그의 책을 빌리려고 봤더니, 
「향수」 외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은 「깊이에의 강요」와 「콘트라베이스」 두 권밖에 없었다.
그 두 권마저도 매우 얇다 !!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그의 글이 이렇게 조금이라니 안타깝기도 했다.

*

이 책에는 4편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뫼사르의 유언, 문학적 건망증.

깊이에의 강요는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말에
인생을 말아먹은 한 예술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론가의 말에서 시작해서 평론가의 말로 끝나며, 한 사람의 삶을 정말 짧게 묘사하는데 인상이 깊더군.
난 이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제목 자체가 마음에 와닿았던 책이 두 권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깊이에의 강요'
깊이란 정말 무엇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말. 
그리고 한 예술가의 삶을 망쳐놓을 만큼  영향력 있는 말.

승부.
이건 한 젋은이와 한 늙은이가 체스판을 벌이는 이야기다.
체스를 잘 모름에도 이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단 체스 한 판을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니.
젊은이와 늙은이의 대결이, 괜스레 그르누이와 발디니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결국은 늙은이가 이기지만, 늙은이는 오히려 패배감을 느낀다.
늙은이는 오히려 젊은이가 자신이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쥐스킨트는 어떻게 그렇게 오묘하고 치졸한 내면을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은둔자로 산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인간 내면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자신 혼자만의 성찰만으로 불가능할 텐데 말이지-.
승부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고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었다.

뫼사르의 유언은 난 정말 이게 뫼사르라는 사람이 쓴 것일까 하는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다 읽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 
지구는 닫혀가는 조개라는데... 음?

마지막 글 문학적 건망증은 소설이 아니라 그의 에세이였다. 
그가 한탄하던 그의 문학적 건망증이 난 다소 부러웠다. 
그가 문학적 건망증에 대한 자기 변호를 너무 잘해서 그런 건지, 
정말 오히려 그러한 건망증이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인상 깊었던 표현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나만의 표현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

이제 곧 콘트라베이스도 읽어야지 : )
난 독일 작가들이 정말 좋다.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루이제 린저, 파트리크 쥐스킨트.

독일문학만의 색깔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기후 때문일까?
철확자들도 유난히 많고 말야.
아, 그러고보니 니체도 독일이잖아 !!!
독일...음....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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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
처음에 그는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려 보이는 것이다. 마치 서너 살 먹은 꼬마처럼 말이다. 붙임성이 없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고집불통인 어린아이들, 그들이 순진무구하다고 말들 하지만 실은 자기밖에 모르고 전제군주나 된 듯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제 밑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존재들이다.
*
발디니는 여전히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서 욕설을 퍼붓고 있기는 했지만, 밖으로 보여 주기 위한 분노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안에서부터 차차 가라앉고 있었다. 끝에 와서 자신의 말이 왜 그렇게 공허한 격정으로 치닫게 됐는지 그르누이가 따져 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르누이가 <이제 끝났어요>라고 말했지만 그런 말은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
달빛 속에서는 색채의 구분은 사라지고 단지 지형의 희미한 윤곽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칙칙한 회색빛으로 자연을 뒤덮어 밤새 생명을 억누르고 있었다. 가끔 그림자처럼 회색빛 숲 위로 불어오는 바람 이외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벌거벗은 대지의 냄새 이외에는 살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납으로 만든 것 같은 이 세계가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세계였다. 그것은 그의 내면 세계와 닮아 있었다.
*
그렇지만 그는 용기를 냈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두려움으로 사실을 알게 되는 두려움을 물리쳤다.

**

아 정말 최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 책.
알베르 까뮈, 프란츠 카프카에 이어  정말 깊이 심히 사랑하게 될 듯.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사람.
아 처음에 제목 쓸 때,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고 쓸 뻔했다.
이 또라이놈, 정말 이보다 더 천재일 수 없고 이보다 더 또라이일 수 없는 이 놈에게 너무 몰입해 있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문장이 수도 없이 많아 정말 꼽기 힘들었다.
그냥 책을 다시 다시 또 읽어야지.
정말 이건 말도 안 될 정도로 최고였어.
진짜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내가 후각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그르누이가 떠오르고 '그르누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계속 계속 들게 한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빈틈도 없는 것처럼 이어진다.
정말이지 단 한 틈의 지루함도 없이 끌고 가는 문장력....
어떤 시상도 거부하고 언론 접촉도 거부하고
완전 신비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 정말 대박 대박 대박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지루해지던 참에, 쥐스킨트 콜렉션도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