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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6 리스본행 야간열차1,2 -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1,2 -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파스칼 메르시어 (들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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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파스칼 메르시어 (들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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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면, 그럼 말로는 도대체 뭘 해야 하느냐고 그레고리우스가 물었다. 독시아데스는 껄껄 웃었다. "스스로 말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지요! 그래서 말이 계속 이어지도록."


'상상력은 우리의 마지막 성소다.' 그가 늘 했던 말이지요.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내가 아빠의 상상에 대해 아는 게 있던가? 왜 우리는 부모의 상상에 대해 이다지도 모를까? 어떤 사람이 상상을 통해 받는 이미지에 대해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의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에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 새겨지지. 우리는 낙인찍힌 글을 찾고 해석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면서도, 우리가 그걸 정말 이해했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어.


침대 끝에 걸터앉아 세상에 동화하며 살기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 - 계산이 된, 거리를 둔 - 이 옳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레고리우스라는 헤브라이어, 그리스어 등 고대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어느날 그가 아마데우 드 프라두 라는 포르투갈 의사가 쓴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아마데우 드 프라두를 좇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는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를 가르치는 매일 똑같은 일상만 살아온, 다른 사람이 들으면 너무 지루한 인생처럼 들리는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전혀 다른 삶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글을 읽고, 거기에 대해서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피드백하는 형식의 글.
그리고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글에서는 읽을 수 없는 그의 진짜 삶과 역사를,
그와 삶을 함께 했던 사람들 - 그의 누이 아드리아나, 그의 환자였던 코우팅뉴 노인, 그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였던 마리아 주앙, 그의 스승이었던 바르톨로메우 신부, 그의 둘도 없는 친구 조르지, 그의 늦둥이 동생 멜로디, 그와 함께 저항운동을 했던 주앙 에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삶을 붕괴시킬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 에스테피아- 과의 만남을 통해 알아가는 이야기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외모를 지닌 사람이었고, 부유한 귀족이었으며, 그럼에도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느꼈던 사람이고, 시를 사랑했던 예민한 감각의 사람이었다.

부유한 귀족 집안과 같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의 특권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며 행사하는 사람과, 그 특권을 부담스러운 짐처럼 여기는 사람.
아마데우 드 프라두는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의 특권은 그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자살이나 고통에 대한 항변을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지만,
 사실 그들이 지닌 예민함은 평범한 농부의 아들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이 가르치는 언어를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아마데우 또한 '아마데우가 언어 그 자체'라고 느껴질 만큼 언어를 사랑하고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언어'였다.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기차를 탄 여자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말이 있기 전, 세상의 침묵」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책을 읽으면서 나도 정말 여러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나라 언어를 쓰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그래서 일제시대 때 자신의 이름도 일본어식으로 바꿔서 부르곤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담은 것이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 -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 이 어느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언어는 곧 영혼이고 영혼은 곧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을 지은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페터 비에리)는 대학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소설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게 아닐까.


이탤릭체로 쓰여진 글들은 모두 책속의책, 즉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쓴 글들이다.
그가 쓴 글들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한 단어 한 단어 정성들여 읽어야 하는 시 같아서 읽는 데 오랜 시간 이 걸린다.
하지만 그렇게 그의 문장들을 꼼꼼히 읽다보면(그의 글을 따라 써보기 까지 하는 그레고리우스만큼은 못하지만), 어느새 아마데우의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