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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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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
처음에 그는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려 보이는 것이다. 마치 서너 살 먹은 꼬마처럼 말이다. 붙임성이 없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고집불통인 어린아이들, 그들이 순진무구하다고 말들 하지만 실은 자기밖에 모르고 전제군주나 된 듯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제 밑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존재들이다.
*
발디니는 여전히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서 욕설을 퍼붓고 있기는 했지만, 밖으로 보여 주기 위한 분노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안에서부터 차차 가라앉고 있었다. 끝에 와서 자신의 말이 왜 그렇게 공허한 격정으로 치닫게 됐는지 그르누이가 따져 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르누이가 <이제 끝났어요>라고 말했지만 그런 말은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
달빛 속에서는 색채의 구분은 사라지고 단지 지형의 희미한 윤곽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칙칙한 회색빛으로 자연을 뒤덮어 밤새 생명을 억누르고 있었다. 가끔 그림자처럼 회색빛 숲 위로 불어오는 바람 이외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벌거벗은 대지의 냄새 이외에는 살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납으로 만든 것 같은 이 세계가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세계였다. 그것은 그의 내면 세계와 닮아 있었다.
*
그렇지만 그는 용기를 냈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두려움으로 사실을 알게 되는 두려움을 물리쳤다.

**

아 정말 최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 책.
알베르 까뮈, 프란츠 카프카에 이어  정말 깊이 심히 사랑하게 될 듯.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사람.
아 처음에 제목 쓸 때,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고 쓸 뻔했다.
이 또라이놈, 정말 이보다 더 천재일 수 없고 이보다 더 또라이일 수 없는 이 놈에게 너무 몰입해 있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문장이 수도 없이 많아 정말 꼽기 힘들었다.
그냥 책을 다시 다시 또 읽어야지.
정말 이건 말도 안 될 정도로 최고였어.
진짜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내가 후각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그르누이가 떠오르고 '그르누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계속 계속 들게 한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빈틈도 없는 것처럼 이어진다.
정말이지 단 한 틈의 지루함도 없이 끌고 가는 문장력....
어떤 시상도 거부하고 언론 접촉도 거부하고
완전 신비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 정말 대박 대박 대박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지루해지던 참에, 쥐스킨트 콜렉션도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