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 김영하

퀴즈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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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의 김영하 책 중, "뭐가 제일 재밌어요?" 하고 물어봤을 때,
"빛의 제국이 제일 재밌고요, 퀴즈쇼는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밌어요~" 라고 하셨다.
그 말은 실로 참이었다.
'빛의 제국' 다음으로 읽은 '퀴즈쇼'도 정말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밌었다.
그리고 현대적인 느낌이었다.
과거에는, 불과 10년 전에도 불가능했던 삶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

돌봐주던 친척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고, 거기다 백수에 빚쟁이가 된 주인공 민수 씨가 퀴즈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 ! ! ! '-'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벽속의요정 이라는 사람과 형용할수없는? 사랑에 빠진다.

이 소설은 빛의 제국과는 달리 오직 민수씨 1인칭 관점의 소설이다.
그가 아는 것, 그 이상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뭔가 알 수 없는 의혹들이 풀리지 않고 끝나서 아쉬웠다.
뭔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고 술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마치 투비컨티뉴드, 같은 민수씨의 이 소설 마지막 장 이후의 삶은 다소 예측할 수 없달까.

찬란한 20대의 청춘소설이다..... ?
이런 걸 기대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무기력한, 다소 사회에서 '패배자'라고 여기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나의 무기력함을 민수 씨의 무기력함에 비교하며 위안을 얻었을 정도.
다소 낭만적이고, 팔팔 뛰는 것 같은 청춘은 '개밥바라기별'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동경이 되는.
여기저기 방랑하며 하루종일 노동을 하고 소주 한잔 기울이고 개밥바라기별을 바라보는 낭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매우 기억에 남았던 건 이 부분이다.
*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데?
- 잘 모르겠어
-모를 리가 없어. 말하기가 두려운 거지.
- 정말 모르겠는 걸 어떡해?
-나는 그게 우리 세대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자기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굳게들 믿고 있어.
너무 지나친 기대에 대한 일종의 피로가 있는 것 같아.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받아왔잖아. 부모, 선생, 정치인, 심지어 서태지까지 우리한테 '네 멋대로 하라'고. 원하는 걸 가지라고, 그렇게 부추겼잖아. 피아노 좀 잘 치면 음악 하라고 하고, 글 좀 잘 쓰면 작가 되라고 하고, 영어 좀 잘하면 외교관 되라고 하고..... 언제나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 '하나'를 잘 하는게 어디 쉬운 일이야? 결국 사람들을 자꾸 실망시키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아.
*
틀린 말이라고 하기엔, 지금의 나를 너무나 잘 변호해주는 것 같았다.
넌 꿈이 뭐니? 하는 말에 할 말이 없어 쩔쩔대는 내 모습.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어땠을까?
요새 애들은 꿈이 없어, 라고 혀를 차는 그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하고많은 선택권 중에서 이것저것 재어볼 수 있는,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까?
베이비붐 세대의 그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해 했던 그들은 어떻게든 먹고살 길을 찾고 결국 그것이 천직이 되는 식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세대는, 우리 세대라고 말하기엔 내가 우리의 세대를 대변할 만큼 우리 세대를 잘 알지 못하니,
최소한 나는,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지-, 하는 안이함과 수많은 선택권 속에서 헤매이다가,
Do It Yourself 의 "꿈꾸며 사는거야,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니까~♪" 같은 노래를 들으며,
나는 정작 원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던가.

*

평생 자신을 돌봐준 친척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담담한 민수를 보면,
정말 뫼르소적 느낌이 없잖아 있다.
민수 뿐 아니라,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다소 이방인 같은 느낌이 있지 않은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전쟁 같은 하루하루는 바쁘고 지치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황급히 서로의 시선을 외면한다.
그나마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시시껄렁한 유머로 채워진다.

어쩌면, 민수가 가게 된 회사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현대적인 곳이지만,
작은 사회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강하게 결합돼 있고, 대화에는 깊이가 있다.
정말이지 삶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그 곳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민수는, "가끔은 거기가 더 현실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어. 한번쯤은 해볼 만해. 허위도 가식도 없이 그냥 자기 운명과 맞장 뜨는 세계야." 라고 말하며,
자신을 사랑해주는 예쁜 여자친구를 두고도, 그 곳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소설에서 그려낸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상현실에 빠져들었다.
나도, 한번쯤은 그런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