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저자
박민규 지음
출판사
예담 | 2009-07-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상 옆에 들러리 선 우리의 자화상!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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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 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므로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다 나에게는 보로메 섬이라고 여겨진다.

....중략.

나는 생각했었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이었다.


죽은 황후가 살았던, 이제는 죽은 잔디와... 죽은 나뭇잎들이 뒹구는 그 뜰은, 그래서 내가 접한 새로운 세계의 첫 페이지였다. 예뻐와 착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페이지를, 그러나 실은 누구나 건너야 한다는 사실을 안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떤 인간도 돈 있어, 만응로는 스스로의 인ㅅ ㅐㅇ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여자도 오빠, 나 오늘 이뻐?로 평생을 버틸 수 없다.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 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제목과 표지를 보고 왕정시대에 왕실에서 일어나는 비극일 줄 알았는데, 80년대 한국의 이야기였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그동안 어떻게 문학 없이 살았지?' 하는 생각. 글이 참, 아름답다. 요즘 작가지망생들이 가장 되고 싶어하는 작가가 박민규라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닌가보다. 글에는 호흡이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알 수 있다. '아, 이런 게 글의 호흡이라는 거구나!' 추리소설에서 긴장감을 줘서 숨가쁘게 하는 호흡이 아니라 정말 오르락내리락 하는 호흡. 문장 사이에 있는 빈 줄이라던가, A라는 이야기에서 B라는 이야기로 교묘하게 넘어가는 간극에 참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랑에 대한 말도 안 되는 환상을 심어주는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 나같은 사람의 가슴도 다시 뛰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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