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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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연수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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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나는 고립된 사람들에게 현실이 한순간 흔들리면서 그보다 더 생생한 환상이 나타나는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다.

도덕적이고 공적이라는 말은 그런 욕망을 지닌 우리들이 그 욕망의 대상들보다 사회적 위치가 높다는 사실을 뜻했다. 실제로 도덕적으로 욕망할 때도 그랬지만, 도덕적으로 욕망한다고 생각할 때도 우리는 스스로 뭔가를 희생하고 있다고 믿었고, 뭔가를 희생하는 한, 우리는 스스로  욕망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내게 느닷없이 특정한 대상을 향한, 그 어떤 희생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너무나 사적인 욕망이 자리잡았으므로 나는 당연하게도 그 욕망을 부도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백히 부도덕한 모든 것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점령하고 거기서 떠나지 않는다.

가장 육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은 그런 온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한 상태. 하지만 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전해지는 그 정도의 온기면 충분했다.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 바 있다. 권력이 훼손될 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양될 때, 폭력은 일어난다. 권력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정권 아래에서 폭력이 빈번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정권은 대리 감시자들에게 그 불안한 권력을 나눠주는 것으로 권력 유지의 한 방편을 삼는다. 그 대리 감시자들의 불안한 권력은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우울증, 강한 상대에게 품게 되는 열등감, 선한 사람이 마땅히 가지는 죄책감 등이 압도적인 폭력이 시기를 만나게 되면 때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로서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일컬어 사랑이라고 말해야 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1980년대에 많은사람들이 다른 감정들, 예를 들어 증오심이나 복수심, 혹은 공명심 등을 사랑으로 오인한 것만은 분명했다.



표현이나 문장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부분에서는 빠져들었으나, 뒷부분으로 갈 수록 지루해지는 느낌.
지루한 1980년대의 운동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작가는 운동권이었던 사람이겠지...?
그 때 그 시절,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은 그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짧은 내 생각으로는, 그 때를 회상하는 느낌이 내가 뮤지컬 무대에 올랐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개념-마르크스주의 같은 것들-에 푹 빠져 있었고 열렬했고,
그리고 그 열렬한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됐다.
그리고 모두 하나가 되어서 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했을 때 그들은 아마도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전하려는 뜻이 얼마나 전달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그 때 그 순간의 터질 듯한 환희에 취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모든 정치적 격동이 끝난 후에야 태어난 나의 추측이다.
강한 누군가가 억압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다가도 정작 이뤄지고 나면, 사회주의 체제가 생기고 나면, 결국은 뿔뿔이 흩어지고 무너지고 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이기기 어려운 상대에 맞서고 있다는 것만으로 쾌감을 느낀다.
혼자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복종해야만 했던 상대를, '집단'이 되어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들은 싸우고 싶을 나이에 실컷 싸웠다.
그리고 그들이 열렬하게 참여했던 싸움은 한국 현대사가 되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그 때 그 시절을 잊겠는가?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정말 아주 먼 이야기 같을 뿐이다.
불과 몇십년 전 일인데, 어찌 그렇게 사람들의 삶이 다를까 희한할 뿐이다.
주인공이 이길용의 삶을 정말 허구인 것 같 은 진실로, 먼 나라 이야기로 바라보는 것처럼
나에게도 운동권 이야기는 그렇다.
마치 쇼윈도를 통해 보는 복고풍 옷 같은 느낌이다.
가게 주인은 복고풍 옷을 화려하게 전시해 놓지만, 그것들과 나 사이에는 시대의 차이라는 견고한 유리벽이 존재하고 있고,
나는 무관심하게 쇼윈도를 지나가고 만다. 바쁜 발걸음으로.
뒷부분에 갈 수록 많이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 나의 느낌은 그러했다.
무감각했고 흥미도 없었다.
첫 부분을 읽으며 기대했던 것은 어떤 러브스토리였던 것 같다.
1900년대 초반의 역사부터 시작하여 여러 사람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개연성으로 묶으려고 한 것 같았으나,
나에게는 그 개연성들도 부족해 보였다.
그저 그 시절의 단상들을 토막 토막 이어붙이려고 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스토리보다는 시대상을 읽게 된 책이었다.